기독교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종교로 하나님께 진 것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승리한 것으로 봅니다. 인간끼리의 싸움에서 인간에게 진 것은 실패한 것이거나 패배한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끼리의 싸움에서도 예외는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진 것을 부모가 졌다고 하지 않고 자식이 이겼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예외 조항을 제외하고는 인간세(人間世)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그리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 싸움의 상대가 하나님이라면 어떨까요? 성경은 하나님과의 싸움에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고대 이스라엘에 살았던 사무엘이라는 사람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사무엘상15:22). 굳이 인간이 하나님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을 대신해  올라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기에 성경은 거꾸로 셈을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할 능력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이겨봤자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하나님께 지는 법을 배운 뒤 인간에게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거꾸로 하나님께 이기는 방법을 배운 후 사람에게 지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 하나님께 무조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아낸 후 사람에게는 져서 거꾸로 그것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인데 둘 다 '신적 수동태(divine passive)'로 서술 돼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주도한 것이지 인간이 주도한 것이 아니기에 신약성경을 보면 인간의 몫이 능동태가 아닌 인간의 몫이 없는 수동태로 서술돼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동태이기에 인간의 몫은 없고, 둘 다 인간이 하나님께 패배한 사건입니다. 십자가 이후에 일어난 부활 사건은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사건에 내가 편승(便乘)한 것입니다. 내가 이긴 것이 아닙니다. 부활마저도 내가 하나님께 진 사건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있을 수 없는것 이라면 내가 먼저 하나님께 지고, 그 뒤에 예수님이 악을 이긴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고 해서 그가 악에게 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을 내가 이긴 것으로 파악하는 순간부터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 하는 우상(偶像)이 돼 버립니다.

<누가복음>에서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를 축복하며 그분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넘어지게 할 분 이라고 합니다(누가복음 2:34). 하나님과 인간의 싸움에서 인간이 지도록 유도하실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 지는 법을 가르쳐주러 오신 분입니다.

[편집자주] 아나돗학교는 새터민 대학생과 청소년을 위한 국어ㆍ 논술ㆍ독서ㆍ한문 교육을 하는 교육기관입니다. 아나돗교회는 기독교 상담과 성경공부를 무료 교육하는 교회입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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