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미래에서 현재로 흐릅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지 않습니다. 현재를 낳는 것은 과거보다도 오히려 미래입니다. 과거는 현재가 불러주었을 때 살아나지만 미래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있습니다. 따라서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로부터 기습을 당합니다. 

깊은 바다 속 어두컴컴한 세상에서 사는 심해어(深海魚)는 바로 앞밖에 보지 못합니다. 불안과 초조로 자기 삶을 수놓은 사람도 미래를 짧게 봅니다. 기독교인에게 부활은 긴 미래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다가올 부활을 그 결에 따라 길게 준비하지 않으면 그것을 감사함으로 영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기습을 당하게 됩니다.

북극성을 바라보며 늘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북극성 가까이에서 행복한 종말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부활이라는 미래의 삶을 통해 드러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지금 내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이를 위해 1년, 5년, 10년 단위로 목표를 정하면 그때그때 성과 관리가 가능합니다. 내가 부활의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체크가 가능합니다. 그러면 미래로부터 기습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 부활이라는 북극성을 향한 여행길에서 나를 위해 빛나는 작은 별을 하나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더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

제가 '국민학교(國民學校)'를 다녔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국민학교라는 표현을 이제는 쓰지 않으니 초등학교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저는 고개를 가만히 가로 저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국민학교를 다녔고 그것은 저희 세대가 지닌 아픔이기에, 준비하지 못했던 부활과 미래가 저희 세대를 기습한 역사적 교훈으로 국민학교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1941년 일본왕의 칙령으로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의미인 국민학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초등교육기관이 소학교(小學校) 대신 국민학교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명칭을 1945년 8ㆍ15광복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다가 1996년이 되어서야 민족정기회복을 꾀한다고 하면서 '초등학교'로 바꿨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국민ㆍ중ㆍ고등학교'의 배열이 합리적인지, '초등ㆍ중ㆍ고등학교'의 배열이 합리적인지를 해방이 된지 50년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알게 되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저희 세대는 부활과 미래의 기습에 거의 대비를 하지 못했던 세대입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고 나라의 기둥이라고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으면서도 그들이 다녔던 학교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로 부르게 했던, 미래의 기습에 전혀 준비하지 못했던 세대입니다. 여러분은 부활과 미래의 기습에 대비하고 계십니까.

이 글을 쓰면서 자꾸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라고 써 놓으면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초등학교로 바꿨습니다. 글을 쓰면서 '진즉 이렇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국민학교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있는데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왜 이렇게 난리를 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키워드

#N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