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 페터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2~1635, 오크에 유채, 144.8×193.7㎝ ⓒ 런던 내셔널 갤러리
▲ 페터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2~1635, 오크에 유채, 144.8×193.7㎝ ⓒ 런던 내셔널 갤러리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 연회가 한창이던 중 갑자기 사과 하나가 잔칫상에 떨어졌다.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복수의 칼날을 갈며 던진 사과.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사과에 적힌 이 짧은 문장이 불러온 결과는 엄청 났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던진 사과 한 알로부터 야기된 트로이 전쟁, 신들까지 양분되며 전쟁에 가세한 대서사시의 전주곡이었다.

제우스의 조강지처 헤라, 사랑하는 딸 아테네, 그리고 며느리 아프로디테. 이들 세 여신이 "사과의 주인은 당연히 자신"이라고 주장하자 심판자 제우스는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난감한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의 임무를 떠넘긴다. 가장 잘 생겼다고 소문이 난 파리스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센스 있는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트로이로 날아간 세 여신(그림 왼쪽부터 아테네·아프로디테·헤라)은 '심판자'에게 경품을 내건다. 헤라는 아시아 통치권, 아테네는 전쟁의 승리와 명예,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공약'을 했다.

파리스가 내민 사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아프로디테. 이제 두 발짝만 앞으로 나가면 어마어마한 분열의 씨앗이 될 황금사과는 그녀의 차지가 된다. 아프로디테가 '미의 여신'으로 공인되는 순간이다.

▲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부분
▲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부분

<파리스의 심판>을 그린 작가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플랑드르 출신).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은 모두 풍성한 몸매로 '살집 있게' 그려졌다. 아마도 미인에 대한 화가의 취향이 반영된 듯하다. 밑그림 없이 처음부터 붓으로 그리는 루벤스 특유의 기법은 인물에 윤곽선이 없어 화면에서 더욱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 '미의 여신'으로 등극한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의 손목을 잡고 그리스의 스파르타 왕궁으로 날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에게로 말이다. 문제는 그녀의 남편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파리스와 헬레네는 보자마자 서로 사랑에 빠졌다. 아내가 젊고 잘생긴 남자와 야반도주 한 줄도 모르고 순진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의 불한당에게 아내가 납치됐다고 생각했다. 복수로 눈이 벌개진 그는 트로이에 선전포고를 한다.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의 시발점이다. 미케네의 왕이자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도 참전했고, 든든한 지략가이자 친구인 오디세우스도 트로이로 함께 향했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미의 여신'으로 등극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파리스와 헬레네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스 군대를 막았다. 그러나 황금사과를 손에 쥐지 못한 아테네와 헤라의 분노를 한 몸에 받게 된 트로이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아테네 편에 섰고, 오디세우스의 전술로 탄생한 이른바 '목마 작전'은 결국 트로이를 멸망의 길로 몰아 갔다. 결과적으로 파리스의 심판으로 인해 트로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 연회를 거꾸로 돌려보자. 여신들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황금사과'를 서로에게 양보했다면 어땠을까.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왕따' 시키지 않고 결혼잔치에 초대했다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까.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거나 꺼려지는 상대를 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전에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든가, 맘에 들지 않아도 '타협을 위한 소통의 노력'을 해야 한다. 미리부터 불화를 예단해 협상테이블에 조차 초대하지 않는다면 긍정적인 결과는 커녕 기적에 목숨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국가 또는 어떤 단체의 리더가 내리는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친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다.

'To be, or not to be.'

자신을 구하러 오는 남편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자 헬레네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애인 파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편을 따라나설 것인가, 말 것인가.

역시나 남편을 향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날리며 달려가 안기는 헬레네. 그녀의 선택은 그렇게 가증스러웠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 만족. 남편과 함께 그리스의 스파르타 왕궁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고 한다. 이쁘면 다 용서된다던가.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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