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군인은 서로 상반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몸 안의 여러 장기들처럼 둘 모두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시대가 전쟁을 모르는 평화로운 시기라면 노래하는 시인이 필요하고, 평화를 간구하고 있으나 지나친 욕심으로 분쟁이 일어나 있는 상태라면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는 군인이 필요합니다.

겉보기에는 둘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 같지만, 사실은 서로 맞닿아 있는 끈의 양쪽을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 시편을 쓴 고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나 전장에서 늘 괴테의 작품을 읽고 있었던 나폴레옹의 모습을 보면 이런 면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인간만 지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시편 19:1∼4). 자연이 자신들이 지어서 부르고 있는 노래를 온 누리에 들리도록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의 훈련을 거쳐야 인간이 비로소 자연이 내는 그들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내는 조용한 소리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비해 아주 시끄러운 인간의 소리는 긴 세월의 흐름 앞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분쟁을 가져오는 기계화된 로봇 군인만을 앞세워 전쟁을 벌인 후 그 결과물로 만든 것이 제국(帝國)입니다. 처음 제국을 만들 때는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만든 이들의 바람과 달리 제국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사라지는 제국 안에 참된 군인과 같이 평화를 그리워한 시인이 있었고, 여전히 남아 있는 자연의 소리처럼 제국의 폭력에 아파하면서 시인들이 남긴 작품들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한 때 다윗처럼 시인이 되는 꿈을 꿨습니다. 인간들이 그토록 공을 들여 만든 제국은 사라지지만, 시인의 노래는 천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기에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어 시인이 되지 못했고, 꿈도 버리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여러 해를 보내다가, 어느 날 '자연이 지어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는 성경구절을 읽게 됐습니다. 경악했습니다. 시인을 꿈꾸고 있으면서도 온 누리에 퍼져 있다는, 낮이 낮에게 밤이 밤에게 전해주는 노래를 저는 여전히 듣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죽음의 꼭두각시가 지정한 단일 언어를 거부하고 인생의 아름다운 복잡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다양한 언어를 지켜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가 시인이기에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부르는 만물의 다양한 노래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손과 말을 하는 입만 시인이 아니라, 듣는 귀도 시인이 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올바른 신앙인이 곧 시인이라고 합니다. 즉 신앙인은 참된 군인이자 시인입니다.

신앙인은 군인이자 시인이기에 형해(形骸)화된 인간의 몸에 있는 발성기관이 내는 소리만 들으면 안 됩니다. 이 소리는 때로 하나님과 역사의 교훈 앞에서 소음이 되기에 낮과 밤이 부르는, 자연이 들려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따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거친 사투리로 부르는 들노래가 더 위대한 노래가 되기에, 들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우리네 우겨진 터전으로 굳이 친구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아름다운 희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첨언하자면 '더 세이프 타임즈'의 논조처럼, 안전한 아름다움이 인간을 구조(救助)할 것인데, 이런 귀가 있어야 안전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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