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비인후과에 가서 의료용 진공흡입기로 목과 코 안을 뜯어냈던 적이 있습니다. 불필요하다고, 오히려 해가 된다고 의사가 제 몸의 일부를 뜯어내고 났더니 하루가 지나도록 목이 따끔거렸습니다. 그 기억에서 더 힘들었던 것은 제 몸에 대한 신뢰가 자꾸 줄어들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휜 코뼈를 지녔기에 알레르기성 비염을 달고 살았는데, 레이저로 코를 지지고 휜 코뼈를 조금 뜯어내는 등 일단의 조치를 하고 났더니 한 10년 동안은 잠잠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제 몸을 믿었습니다. 

너무 제 몸을 믿었더니 다시 탈이 났었습니다. '코에 여러 가지 치유책을 동원해 서비스를 제공했으니 설마 나를 배신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었으나, 그 기대도 시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코로부터 시작된 염증(炎症)이 목과 귀에까지 갔었고, 저는 제 몸을 돌아보면서 제 몸이 지닌 업을 한탄해야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비염에서 전이된 중이염으로 인해 난청까지 생겼다고 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비염으로 끊임없이 코를 풀어댔지만, 아직은 쓸 만하다는 착각에 제 몸을 믿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었습니다.

그 후 나이가 쉰 살을 넘어가니 요즘에는 가벼운 감기마저도 병원에 가야 겨우 낫는 몸이 돼 갑니다. 서글프지만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입니다. 예전과 달리 제 몸을 믿지 못하게 되자, 성경에서 말하는 신령한 몸이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 백두(白頭)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성(理性)은 플라톤의 말처럼 이데아(Idea)의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존재하며, 이성의 기능은 삶의 기술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가 쓴 글을 읽으면서 '성령님이 덧입혀 주신다는 신령한 몸에도 이성이 있을까, 그 이성은 어떤 기능을 할까, 신령한 몸에 있는 이성은 어떻게 삶의 기술을 증진시킬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제가 지니고 있고, 쓰고 있는 몸에 대한 믿음이 줄어갈수록 다른 몸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강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제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제 몸은 자꾸 늙고 낡아 갑니다. 눈은 침침해지고, 몸은 책상 앞에 몇 시간만 앉아 있어도 어김없이 마비가 친구처럼 찾아옵니다. 때로 감기라도 한 번 걸리면 어김없이 내과뿐만 아니라 이비인후과까지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출구는 오직 부활로 얻게 되는 신령한 몸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 부활돼, 주어진 삶을 정산(定算)하시는 분 앞에 서야 합니다(요한복음 5:29). 한때 완전한 소멸을 꿈꾸었으나, 그토록 바라던 영원한 소멸은 없었습니다. 만약 소멸이 있다면, 정산이 없다면 굳이 신령한 몸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다 하나님과 역사의 평가 앞에 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신령한 몸이 그리워집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이 단순한 생명 연장의 꿈이 아니기에, 하나님과 역사의 평가 앞에 섰을 때 제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그곳에서 같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만약 그들이 저를 싫어하면 어떻게 할까요. 저를 미워하지 않도록 그들을 더 사랑하면 될까요? 문득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오게 될 환절기가 벌써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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