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음과 어둠, 흑과 백, 승자와 패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뚜렷이 나뉘어 경쟁해야 하는 세상을 우리는 꾸려가고 있습니다. 서로 이질적인 관계가 뚜렷이 나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이러한 풍토에 젖어 살다보니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이겨야하는 무한생존경쟁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투사(鬪士)가 돼야 하는 싸움꾼 중독증을 앓습니다.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가상의 경쟁자를 만들고, 경쟁자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고 맛이나 멋이 없다고 합니다. 주변을 보면 호전(好戰) 중독현상이 너무나 넓게 퍼져 있습니다. 덕분에 좋은 학교의 조건에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보다는 순위경쟁 싸움을 더 잘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포함될 정도가 됐습니다.

이기기 위해, 남보다 앞서기 위해 공부와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좋은 학교를 가거나 직장에 취직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 남보다 1mm라도 앞서야 한다고 주문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직장을 다니고, 같은 직종에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데도 우정을 나누기보다는 경쟁상대로 인식합니다.

대입(大入) 앞에서는 같이 수업을 받았던 아주 친한 친구가 단순하고 치열한 경쟁자로 전락합니다.

기다릴 틈도 없이 그렇게 바쁘게 살아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던가요. 늦었다고, 따라잡아야 한다고 허겁지겁 바삐 움직이며 살아보니 바람대로 다른 이보다 조금 앞서 나가고 있던가요. 혹 앞서가고 있다는 착각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요. 도개걸윷모 다섯 가지나 있는 윷판에서 굳이 모 아니면 도라는 흑백의 이진법(二進法)과 양자택일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종교계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종교적 절대자마저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시대적 유행에 따라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종교가 제시하는 모든 복락(福樂)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로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이 이렇게 말을 하는데, 이제는 정통 종교인 가운데에서도 종교가 제시하는 복락을 경쟁적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한 성장주의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인생에서 그래프가 내려갈 때도 있는데, 그래프가 내려간다고 해서 꼭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가르침이 종교인데, 그들은 그것마저도 경쟁적인 가치로 바꿔 그래프가 올라가야만 복락이라고 합니다.

성장과 이를 위한 경쟁만이 최고의 미덕은 아닙니다. 왼손 없는 오른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직이란 수평과 더불어 존재해야 공고해지고 탄탄해집니다. 해와 달, 별이 뜨는 일상과 가족끼리 마주 대하는 밥상에 담겨진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회는 경쟁적인 경제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경쟁이 필요하고 이것이 가져오는 질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협조와 우정의 가슴으로 포용해야 합니다.

부모가 되는 훈련을 마치고 난 후 부모가 된 이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이자 최대 걸림돌이 자식과 나누는 '따스한 마음'이 아니라 '경제력'이 된 사회는 장애사회입니다. 넓게 퍼진 포용력으로 만들어진 큰마음이 먼저 있어야 세상이 달라집니다. '당장' 변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변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가 돼야 하기에, 포용과 우정이 없는 경쟁을 추구하는 것은 절름발이입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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