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3년간 머물면서 노벨문학상의 작품인 <설국>을 집필한 다카한 온천여관. 3층으로 된 목조건물이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인 <설국>의 서두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설국>은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 온천의 설국(雪國)에서 벌어지는 수차례 걸친 남녀의 재회와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해 하얗게 변해가는 사랑의 밤을 밑바닥까지 또렷하게 관찰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동경에 사는 유부남 시마무라와 약혼자의 치료비를 위해 게이샤가 된 고마코. 둘의 우연한 첫 만남 이후 계절이 흐느적거리며 지나가고 다시 눈으로 뒤덮였을 때,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찾아와 검지를 대뜸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이놈이 당신을 가장 잘 기억해줬어."

그의 말에 고마코는 시마무라의 손바닥을 펴 그 위에 얼굴을 포개며 "이게 기억해 줬어요"라고 되묻는다.

소설 가운데에서 에로티시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이 소설의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정사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입맞춤을 묘사하는 친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동양화를 보듯 여백과 여운이 난무하는 가운데 '손가락이 기억해주었다'는 주인공의 말은 쭉 뻗은 나뭇가지 위에 화룡점정으로 그려진 매화꽃처럼 어떤 섹스 장면보다 더 화려하게 각인된다.

가끔 드라마틱하게 감동적인 허구를 연출하는 마음의 기억과는 달리 몸의 기억은 꽤 정직하다. 손가락을 볼 때마다 떠올렸을 밤의 유희, 그 치열한 쾌감을 쫓아 시마무라는 동경에서 한달음에 니가타현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연인의 눈을 바라보며 고백을 던진다.

소설 속에서는 두 연인의 새로운 몸의 기억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둘은 끊임없이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눌 뿐이다.

▲ 12년이나 걸려 완성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설국>은 그의 미의식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으로 일본정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왜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가는 정사 장면 대신 이렇듯 대화로 여백을 채워나갔을까. 추리소설의 대부 시드니 셀던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 남녀의 정사를 매우 뜨겁고 열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래서 출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그의 책을 읽게 된다면 몸의 온도 변화를 스스로 감지할 수 있을 만큼 화끈하게 아침을 열기도 했다. 이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우냐가 아닌 배경까지 온전하게 색칠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서양화와 종이 밖의 여백까지도 배려하는 동양화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섹스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자. 섹스는 뭘까. 필자는 이를 '핫 바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다면 몸으로 하는 뜨거운 의사소통인 섹스에는 어떠한 법칙이 있을까. 우리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대화라고 하지 않는다. 어떠한 주제가 됐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행위를 대화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몸으로 하는 의사소통인 섹스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동물이 상대의 얼굴을 마주 보며 '거사'를 하지 않는 데 비해, 인간은 상대의 얼굴을 보며 정사를 나눈다. 다시 말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드러나는 얼굴을 마주 본다는 것은 상대의 의사 표현이 섹스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의 몸에 채워지는 희열의 강도를 가늠해가며 상대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화를 잘 할 수 있을까. 서로의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나는 가끔 여자 후배들에게 거울로 얼굴만 보지 말고 자신의 신체를 구석구석 탐구하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쪼그리고 앉는 불편한 자세가 연출되기도 하고, 혹시라도 누군가 볼지도 모르는 약간의 불안감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꽤 숭고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제 자신이 몸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게 됐다면 상대의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방법을 연구해보자. 하지만, 그의 몸이, 또는 그녀의 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일이란 굉장히 어려운 기술을 필요로 한다. 섹스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만의 흥에 취해 혼자 달려가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때, 조금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상대방을 보는 스킬을 익혀보도록 하자. 그러한 스킬에 대해서는 이후에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몸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과감하게 섹스에 도전하는 거다. 섹스는 마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기에 섹스의 스타일만으로도 상대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어 연애를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절차다.

그러나 이것은 고도의 내공이 필요한 일이니 필자와 같은 전문가의 코치가 수반돼야 한다. 이러한 준비가 이루어졌을 때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오르가즘'이라는 선물을 받는 행운이 주어진다.

여기서 잠깐, 섹스의 끝은 '오르가즘'은 아니다. 올바른 교감을 통한 '오르가즘'이 오면 반드시 지진 이후에 강력한 여진이 일어나듯 밤새 몸을 떨게 하는 '멀티 오르가즘'이 온다. 만약, 여자인 그대가 '멀티 오르가즘'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섹스의 걸음마부터 다시 떼어야 할 것이다.

시마무라의 손가락이 기억했을 고마코의 몸을 떠올리며 천천히 당신의 몸 위에 기억의 궤적을 그려보는 거다. 어느 곳에 화산 활동이 이루어지는지, 몸의 지각 변동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곳이 어디 있는지, 꼭 기억하자. 이미 당신의 몸은 그 기억들을 저장해놓을 테고, 그 기억이 멀티 오르가즘의 세계로 당당히 들어서게 만들 테니까.

▲ 근대 서정문학의 대표작으로 196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설국>.

■ 이지운 작가·시인 = 광고·홍보·전시 등 영상 시나리오 1000편 이상을 쓴 전업작가로 <서정문학> 제59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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