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 77ⅹ53㎝, 나무에 유채 ⓒ 루브르박물관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 77ⅹ53㎝, 나무에 유채 ⓒ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1000만명. 

프랑스를 먹여살리는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달 동안 구경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미술품을 보유한 루브르. 그러나 그 많은 미술품 중 가장 사랑을 받는 작품은 단연코 루브르 박물관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모나리자>.

눈썹이 없는 것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 그림은 1911년 도난 사건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뒤 3중 방탄유리관 안에서 '특급 경호'를 받고 있다.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윤곽선 없이 경계를 안개와 같이 흐릿하게 그리는 '스푸마토 기법', 레오나르도는 그림 속 여인의 입가와 눈매를 이 기법으로 그려서 그녀가 웃고 있는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신비한 미소를 '모나리자의 미소'라 부른다.

모나리자(Monna Lisa)의 '모나'는 '마돈나(Madonna)'의 준말로 '부인'에 대한 존칭, '리자'는 이름이다. 페렌체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젊고 아름다웠던 세 번째 아내가 바로 그림의 주인공. 어떻게 16세기에 왕가나 귀족이 아닌 상인 집안의 신분으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천재화가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남편은 유언장에서 그녀를 라틴어 '물리에르 인제누아(Mulier Ingenua)'라고 표현했는데 '물리에르'는 아내란 뜻이고 '인제누아'는 그 영혼이 귀족적이고 내면의 도적적 가치가 높음을 뜻한다. 레오나르도는 주문자의 신분보다 그 내면에 더 주목한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왜 주문자에게 인도되지 않고 오늘날 프랑스의 문화유산이 된 것일까.

젊었을 때의 레오나르도는 그 존재감이 독보적이었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라는 젊은 예술가의 도전을 받으며 스스로 존재감을 잃어갔다. 뭔가 계기가 필요한 시기에 다행히 그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를 만나게 된다. 

이 총명하고 호기심 많은 군주는 레오나르도의 폭넓은 지식과 위대한 예술성에 감동, 프랑스 궁전으로 온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 제안을 수락한 63세의 거장은 프랑스로 갈 때 미완성의 그림 서너 점을 가져간다. 그 중에 하나가 <모나리자>였던 것. 3년 후 은인의 품에 안긴 채 숨을 거둔 레오나르도.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프랑스에 묻혔고, 유품은 프랑스에 귀속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아무리 <모라니자>를 돌려달라고 애원해도 프랑스는 먼 산만 바라볼 뿐.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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